정석윤 2024. 4. 30. 16:07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는

함께  깨달을 얻고자 정진 했던 다섯 도반을 만나

불교의 핵심 교리인 사성제 팔정도를 설한곳

 

사르나트는 붓다가  최초의 불법을 전한후

불교와 불교예술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됨

 

사르나트  이정표

기원전 3세기 불교로 귀의한

아쇼카 왕은  사르나트에 칙령을 새긴

기둥과 사리탑, 수도원등을 세웠다고 함

 

640년 이곳을 방문한 현장법사는

 약 100m높이의 사리탑과 웅장한 승원에

약1500 여명의 승려들이 살았다고 함

 

8세기경 힌두교의 번성과 함께

인도의 불교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12세기 이슬람 침입자들에 의해

불탑및 주요 건물들이 파괴되면서

사르나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함

 

8세기경 신라승려 혜초도

왕오천축국전에서 이때도

불교가 많이 사라지고 사원도

많이 파괴되었다고 함 

 

다메크탑 과  자이나교사원

 

아쇼카 왕의 석주

원래는 15m정도 였는데 지금 2m

아쇼카왕은 인도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점령한 왕으로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아프카니스탄과

인도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그 후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교의 전파에 헌신한  왕이라고 함

 

아쇼카왕 석주 이정표

 

건물은 파괴되고 건물 터만남아있다

 

붉은 사암의 주춧돌

 

건물터 사이 사이에  보리수 나무가

명상과 쉼터를 제공

 

동남아 및 티벳 불교신자들이

많이 온다네요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던 탑이나 

현재는 터만 남아있슴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가이드가 초전 법륜 설명

 

탑 주위를 돌면서 기도하는 순례자들

 

그 당시 건물 기둥들

 

그 당시 사르나트 숲 속에는 많은 무리의

사슴 떼가 살았다고 함 

그래서 사르나트의 한자 이름은 

녹야원 즉 사슴정원이 되었다고 함

 

울타리 너머로 사슴들이 살고 있슴

 

진리를 보는 다메크스투파

 

탑 지름:약28m , 높이: 약34m

 

하단부는 기원전 3세기

상단부는 5세기 양식 문양

 

티벳스님들 과 신도들 탑돌이

 

꽃과 문양들은 5세기 굽타 양식

 

감실에는 부처상이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양식

 

유물 발굴 조사때 나온 초전 법륜상

 

 

발굴 조사때 나온 4마리 사자상

 

왓타이 사르나트 템플

 

태국의 고위 인사에 의해

태국식 디자인으로 지었다고 함

 

연못 정원과 조화롭게

 

부처상 높이는 약 24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