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여행기

(오사카/나라/교토)역사문화탐방 2007.01.07~01.11

정석윤 2007. 1. 20. 06:24
경주박물관에 05시30분에 집결하여 관광버스로 김해공항까지 이동했다  박물관에서 준비한 김밥을 간단히 먹고 09:30분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서도 간단한 아침식사가  나왔다 그리고 잠시후 10:40분 오사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전용 버스를 타고 나라쪽으로 향했다 옛날 나리타 공항에 경유한적은 있어도 일본땅을 밝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  깨끗했다 정리정돈이 잘되어있고 차도의 전선주도 잘 정돈되어 있어고  옆으로 달리는 차는 대부분 소형차였다 그리고 특기한 것은 운전석이 우측에 있다 요즘은 외제차 수입으로 가끔 오른쪽에 있는것도 있으며 고속도로 통행료를 양쪽에서 받는다고 한다 약 한시간후 예약한 식당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먹는 일본음식점이라 모든것이 신기했다 우선 대문 양쪽에는 쟙귀를 물리친다는 소금이 놓여 있어고 ,대문에는 일년행운을 기원하는 부적이라 할까,아니면 우리네 복조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런 이상한 것이 달려 있었는데  그후 우리가 방문한 절이며 ,신사며,  박물관 거이 대부분 달려 있었다, 그리고 식당벽에는 많은 사진이 걸려 있어는데 그지방 행사때 마다 수집한 사진이라고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지자체가  훨신 일찍이  할성화 되었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똘 똘 뭉치는 힘이 강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식당 내부는  일본정통의 다담이 방인데 식탁은 편안하게 다리를 뻗을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내부는 점 설렁했다 우리의 따끈 따끈한  문화와는 좀 차이을 느꼤다   드디어식사시간  매뉴는 샤브샤브 였는데 우선 숟가락이 없었고 ,가로로 놓인 나무젓가락 반찬은 개인당 별도로 조금씩 정갈하게 나왔다  음식양은 적지않았고  반찬은 상대적으로  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로 좋았다고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곧장 동대사로 향했다 가기전 대충 예습하는 마음으로 여행사에서 준 안내책자를 한번정도,읽어보아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어떻게 관람해야 할지 몰라 안내하는 아가씨 꽁무늬만 따라 다녔다.동대사를 처음보는 순간 규모가 굉장히 커다는 것을 느꼈다 ,동대사는 일본화엄종의 총본산이며,대불전은 목조건물로서는 세계최대규모이며, 그건물안에 모신 청동대불 역시 세계최고라 한다 (동대사 높이:52m, 대불높이 :16m)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는데  창건유래를 보면  우리선조인 백제인의 불심과 기술로 이루졌음이 여러문헌에 기록되어 있다,그 증거로 신라에 패망한 백제가  관련 기술자를 데리고 가서 가람건설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고  왕인박사의 후손을 그리는  사월당에는 행기 목조좌상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동대사 내 정창원이라는 보물창고가 있는데 여기에는 신라에서 가져간 숟가락 뭉치도 있다는데 그것은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아 볼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신초행운부적

 

 

그리고 1980년에 세워진 사슴공원이 있는데 주변에 역사적 유물이 많아 푸른 잔디며,사슴,그리고 관광객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라역에서 도보로 1ㅇ분 정도 걸리는 곳에 나라국립박물관이 있는데  일본의 화려했던 왕조 나라시대의 보물과 귀중한 중요문화재가 많으며 주로 불교미술품을 연대별로 전시하고 있다.오늘 견학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카시하라로얄호텔)저녁은 호텔식 뷔폐 였다 특이한 것은 낫또란 음식인데, 우리네 창국장과 비숫하며 콩의크기가 우리것 보다 적고 냄새가 나지 않아 먹기가 좋았다 .그리고는 배정된 방으로 갔는데  비교적 깔금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고 더불침대가 아닌 투 베드로 되어 있어 부부간에는 좀 불편했다,서랍장에는 외국인을 배려하여  성경책을 비취해 놓았고,냉장고는두병의 물과 녹차도 준비되어 있었다.대충 가방을 정리하고 지하 사우나로 갔다

비교적 깨끗하고 수질도 좋은것 같다  그래서 잠은 깊게 잘수가 있었다,호텔내 시설이라서 사용제한은 없었다 그래서 새벽6시에 또 사우나를 찾았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어제의 남탕이 여탕으로,여탕이 남탕으로 바뀌었다 ,탕의 구조는 비슷한데,기능성이 좀 달랐다 ,음 양의 기를 분배하고 두곳을 경험할수가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그네들의 절약정신이라 할까 아니면 고객의 서비스 차원이라 할까? 더운물 (온수)의 온도가 45도를 넘지 않았다.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고 석무대를 향했다.무덤의 규모는 굉장했다 그런데 봉분은 다 파손된 상태였고, 주위에는 발굴작업 및 공원화 작업이 한창이다 .가이드에 의하면  이무덤 주인이 아마도 도래인 (백제)추장의 무덤일 것이라 했다.그리고 다음 여행지 법륭사로 향했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왠 일장기가 걸려있고 세계문화유산이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최초 세계문화유산이라서 그런건지,허지만 우리의 관심은 고구려의승려 담징이 그린 금당벽다 불행하게도 담징이 그린벽화는 화재로 인해  많이 회손된 상태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않고  일본중견화가 그린 모조벽화가 걸려있는데 주위가 어더워서 선명하게 볼수가 없었다 그리고, 법륭사 또하나의 국보급 "옥충주자 "자그마치 2563마리 비단벌레 날개로만든 공예품이 아주 인상적이다. 일본 문화재를 관람하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손 전등이다,왜냐하면 그네들은   어둠 침침하게 전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삼층 목탑안에 봉납되었던 보협인다라니경 :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법륭사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었다.우리의 따근 따근한 밥이 생각났다.그리고는 평등원이 있는 우지천을 향했다 .다리를 가로질러 적당한 물이흐르는 언덕에평등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봉황당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아미터전과 종루,관음전,수장고등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다.잠깐 유래를 보면  헤이안시대(794-12세기말)의대신  원융의 별장터로 나중에 후지와라미찌나까의 별장이 되었고, 1052년 그 아들 요리미찌에게 이양되었다.그리고  대일 여래를 안치하고 평등원으로 불렀다 ,즉 평등원은 극락정토를 이 세상에 출현시키려고 정성을 다하여 조명하였던 사찰이다.특히 해맞이가 유명하며 일본 엔화10엔 그림이 바로 평등원이다,그런데 시간관계상 봉황당 내부를  못보고 온것이 조금 아십다.그리고 교토로 출발했다.숙소는 이조성 바로 옆 교토국제호텔 비교적 깨끗하고 좋았다 그런데 대중사우나는 없었다 .여기서 이박하면서 교토에 있는  교토 박물관, 이조성,풍국신사, 이총,33간당,금각사,청수사,동사,광륭사를  답사했다  그중에서도 이총과 풍국신사를   답사했을때는  왜놈이 원수같이 미웠다  지나간 역사라고 해도 두번다시 일본 , 아니 어느나라에게도 침범을 당하지 않도록 국력을 키워야겠다.그러기 위해서  각자 맡은바 일을 해야 겠지.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광륭사에 있는 일본국보1호인 반가사유상(지금은 국보번호를 부여하지 않음)의 미소가 정말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평화로웠다,그런데 우리네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가슴이 뿌덕햇다.마지막 날 오사카공항근처 난바오리엔탈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사천왕사 오사카성을 관람하고 일정을 마쳤다.일본절의 특징이라면 규모가 우리보다 크고 ,단청이 없으며,탑은 대부분 목탑으로 되어있고,석가모니불상도 보기가 힘들고 ,참배하는 사람도   우리의 불도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네들은 죽은후 거이 화장을 하는데 각자 소속된 절이 있다고 하던군요.도시의 교회는 거이 볼수가 없고 절 아니면 신사였다 그리고 잡신이 그렇게도 많은것 같다.